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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소주 9 Aug 2007 | 03:37 am

때때로 소주에는 많은 것이 담긴다. 아버님이 따라주던 소주를 기억한다. 나의 아버지가 술 취한 저녁마다 이야기했던 '없던 소주' 때문이었다. 나의 아버지에겐 아버지가 없었고 할아버지가 없었다고 했다. 이제 다시 오래된 저녁이지만 소주의 파문마다 아버지의 소주에는 아버지가 없다. 지난하게 귀동냥해온, 없던 소주의 이야기를 지난 2월, 아버님이 따라주던 ...

어떤, 본능 28 Jul 2007 | 03:42 am

껍질의 본능 길상호 사과 껍질을, 배의 껍질을 벗기면서 그들 삶의 나사를 풀어놓는 중이라고 나는 기계적인 생각을 돌린 적 있다 속과 겉의 경계를 예리한 칼로 갈라 껍질과 알맹이를 나누려던 적이 있다 그때마다 몇 점씩 달라붙던 과일의 살점들, 한참 후 쟁반 위 벗겨놓은 껍질을 보니 불어있는 살점을 중심에 두고 돌돌 자신을 말아가고 있다 ...

사랑방 23 Jun 2007 | 05:28 am

2007. 04. 29. JIFF 오, 사랑방

나의 동화 23 Jun 2007 | 05:07 am

일년 전 나는 어머니가 소설을 쓴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썼다. 군 훈련소에서 받았던 어머니의 편지가 생각난 터였다. 그 편지에는 행간에 더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비유나 상징이 아니었다. 당신의 표현은 그렇게 '사이'에 있었다. 아마도 비좁은, 방과 방 사이에서 당신은 그 방식을 터득했을 것이다. 꿰매고 손질하고 간호하는 손, 그 사이에서 어머니는 홀로...

ANKARA movement 10 Apr 2007 | 12:41 pm

   사실, 산책은 계속되고 있다. 당시 내 블로그의 효용은 ‘잘 돼가? 무엇이든.’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잘 돼가와 무엇이든 뒤에 기호는 각각 느낌표나 쉼표까지 포함해서 왔다, 갔다했고 마이너스기호를 이용해서 부정하기도 했다. 그렇게 산책같이 느긋한 추격이거나 추격처럼 진땀나는 산책을 하면서 얻은 것은 포스트마다 박혀있는 시간이다. 그것들은 나무나 꽃처럼...

내려오는 길 4 Aug 2006 | 08:03 pm

獨樂堂 조정권 獨樂堂 對月樓는 벼랑꼭대기에 있지만 옛부터 그리로 오르는 길이 없다. 누굴까, 저 까마득한 벼랑 끝에 은거하며 내려오는 길을 부셔버린 이.

빛나는 만년필시대 29 Jul 2006 | 09:24 pm

만년필 송찬호 이것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인가 만년필 끝 이렇게 작고 짧은 삽날을 나는 여지껏 본 적이 없다 한때, 이것으로 허공에 광두정을 박고 술 취한 넥타이나 구름을 걸어두었다 이것으로 경매에 나오는 죽은 말대가리의 눈화장을 해주는 미용사 일도 하였다 또 한때, 이것으로 근엄한 장군의 수염을 그리거나 부유한 앵무새의 혓바닥 노릇을 한 적...

13층: 숨겨진 아파트의 나라, 슈풍크 24 Jul 2006 | 10:41 pm

  요즘이야 국경을 넘는 일이 잦아지고 필요한 절차도 간소화 됐지만 일세기 전만 해도 주권침탈이나 식민지배, 자원강탈, 종교나 신념, 살생을 위해서 국경을 넘었다. 드물게 무역이나 여행이 목적인 사람도 있었지만 절차도 복잡하거니와 무조건 입국불가를 통보하는 나라도 많았다. 13층에 위치한 숨겨진 아파트의 나라, 슈풍크1)는 아파트먼트 피플들의 천국이었다. ...

죽음의 월부금 19 Jul 2006 | 03:07 am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 벨이 울리고 최승자 많은 사람들이 흘러갔다. 욕망과 욕망의 찌꺼기인 슬픔을 등에 얹고 그들은 나의 창가를 흘러갔다. 나는 흘러가지 않았다. 나는 흘러가지 않았다. 열망과 허망을 버무려 나는 하루를 생산했고 일년을 생산했고 죽음의 월부금을 꼬박꼬박 지불했다. 그래, 끊임없이 나를 호출하는 전화 벨이 울리고 나는 ...

현장의 소통 3 Jul 2006 | 03:33 am

군대와 군인 2년 1개월이 조금 못되게 군인으로 국가에 복무하면서 배워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 뭐뭐하고 싶은 것과 바꿔야할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가 아니라 '피할 수 없으면 바꿔라'에 가깝고 싶었다. 일반적인 실수나 업무적 과실은 당사자(들)가 아니고서는 섣불리 언급할 수 없다. 어떠한 일(업무)에 직접적으로 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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